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강릉 당일치기 (커피거리, 정동진, KTX)

by mashaland 2026. 3. 27.

서울에서 강릉까지 KTX로 1시간 50분. 이 거리가 주는 가능성을 저는 작년 가을에 처음 실감했습니다. 주말 하루를 내서 바다와 커피, 그리고 정동진 모래시계까지 다 보고 올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요. 실제로 다녀와서 느낀 건, 가능하긴 한데 동선을 정말 빡빡하게 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강릉이 커피 도시가 된 이유

강릉이 커피로 유명해진 건 단순히 바다 앞 카페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1세대 바리스타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커피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죠. 고 박이추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전문 로스터들이 안목해변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강릉은 국내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의 메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여기서 스페셜티 커피란 생두의 품질, 로스팅 기법, 추출 방식 등 모든 과정에서 80점 이상의 품질을 인정받은 커피를 의미합니다.

저는 안목해변에서 세 군데 카페를 돌았는데, 각각의 로스팅 포인트(Roasting Point)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로스팅 포인트란 생두를 볶는 정도를 말하는데, 같은 원두라도 얼마나 볶느냐에 따라 신맛, 쓴맛, 단맛의 밸런스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떤 곳은 라이트 로스팅으로 과일향이 강했고, 다른 곳은 미디엄 다크로 초콜릿 같은 묵직함이 있었죠. 이런 차이를 한 장소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게 강릉 커피거리의 진짜 매력이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경강선 KTX가 개통되면서, 강릉은 수도권 당일 생활권으로 들어왔습니다. 교통 접근성이 개선되며 관광객이 급증했고, 지역 경제도 활기를 띠게 됐죠(출처: 한국관광공사). 다만 저는 이 변화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임대료가 오르면서 오래된 골목 카페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고, 주말마다 안목해변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붐빕니다.

정동진, 기차 타고 가는 이유

정동진까지는 강릉역에서 무궁화호로 20~30분이면 닿습니다. 버스나 렌터카로도 갈 수 있지만, 저는 기차를 추천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해 바다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구간이기 때문이죠. 창밖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보면서 가는 그 짧은 시간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습니다.

 

정동진역은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입니다. 역을 나서면 바로 모래사장이고, 몇 걸음만 가면 세계 최대 모래시계가 있는 공원이 나옵니다. 모래시계는 1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회전하는데,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지름 8.06m, 높이 17.71m의 이 모래시계는 1년간 모래가 떨어지도록 설계됐다고 합니다.

저는 오후 1시쯤 정동진에 도착했는데, 솔직히 시간이 좀 촉박했습니다. 모래시계 공원 구경하고, 해변 산책하고,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려니 1시간 반 정도밖에 시간이 없더라고요.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최소 2시간은 잡으시는 게 좋습니다. 다만 무궁화호 배차 간격이 넉넉하지 않으니, 코레일 앱으로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고 동선을 짜야 합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정동진에서 1~2시간을 그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당일치기 동선

당일치기는 가능하지만, 첫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청량리역 기준 오전 6시 30분쯤 출발하는 KTX를 타면 강릉에 8시 30분쯤 도착합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싸움입니다. 제가 직접 다녀온 루트는 이렇습니다.

 

강릉역 도착 → 택시로 안목해변 커피거리 이동(약 10분) →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바다 구경(1시간~1시간 반) → 중앙시장으로 이동해 점심식사(초당순두부 또는 감자옹심이) → 강릉역으로 복귀해 정동진행 무궁화호 탑승 → 전동진 모래시계 공원과 해변 산책 → 강릉역 복귀 → 저녁 5시 30분

 

6시 사이 서울행 KTX 탑승.

이 동선의 핵심은 정동진 기차 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거기에 맞춰 앞뒤 일정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후 1시 10분 기차를 탔고, 정동진에서 3시쯤 돌아오는 기차를 탔습니다. 만약 경포대나 오죽헌까지 욕심을 내면, 이동 시간만 왕복 1시간 이상 추가됩니다. 그러면 당일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교통편은 택시가 가장 편리합니다. 강릉 시내는 카카오택시가 잘 잡히고, 요금도 서울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커피거리에서 중앙시장까지 택시비가 6,000~7,000원 정도였고, 시장에서 강릉역까지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버스도 다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곳을 돌아야 하는 당일치기에서는 택시가 훨씬 효율적입니다.

당일치기의 현실과 아쉬움

당일치기로 강릉과 정동진을 다녀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가능하지만 추천하지 않는다"고 답하겠습니다. 실제로 다녀와 보니, 각 장소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커피거리에서는 딱 한 곳만 들렀고, 정동진에서는 모래시계만 보고 바로 돌아와야 했죠. 여행이라기보다는 스탬프 투어에 가까웠습니다.

강릉은 1박 2일로 천천히 둘러보는 게 맞는 도시입니다. 아침에 경포해변을 산책하고, 오죽헌에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흔적을 느끼고, 저녁에는 중앙시장에서 현지인들과 섞여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당일치기는 분명 가능하지만, 그렇게 다녀오면 "다음에 또 와야겠다"는 아쉬움만 남습니다.

 

오히려 그 아쉬움이 다음 여행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당일치기 이후, 내년 봄에는 꼭 1박 2일로 다시 가려고 계획 중입니다. 다 보려 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 두세 가지만 깊게 즐기고 오세요. KTX 개통 이후 강릉은 확실히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시가 됐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활기가 생겼고, 여행자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죠. 그런데 동시에 오래된 골목 카페가 임대료를 감당 못해 문을 닫고, 조용했던 해변이 주말마다 인파로 몸살을 앓는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교통이 편리해질수록 그 지역 고유의 분위기가 희석되는 아이러니는 강릉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강릉 관광객 수는 약 1,200만 명으로, KTX 개통 전보다 30% 이상 증가했습니다(출처: 강릉시청). 좋아하는 여행지를 오래 좋아하고 싶다면, 여행자로서 그 공간을 어떻게 대하느냐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blog.naver.com/hyechon49/223902988478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