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라는 노래 한 곡이 도시 전체를 바꿔놓은 것,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수에 가보면 노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가을에 첫 여수行을 결심했는데, 돌아오는 KTX 안에서 이미 다음 일정을 머릿속으로 짜고 있었습니다.

낭만포차와 야경 — 노래가 만든 기대, 현실은 그보다 위였습니다
여수 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 주변에서 한 마디씩 하더군요. "노래 때문에 유명해진 거지, 실제로는 평범하지 않냐"고. 일반적으로 노래나 드라마로 뜬 여행지는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는데, 여수는 제 경험상 그 반대였습니다.
낭만포차 거리에 저녁 6시 30분쯤 도착했을 때, 연탄불 위에서 굴과 조개가 익어가는 냄새가 먼저 반겼습니다. 구항(舊港), 즉 오래된 항구 앞에 줄지어 선 포장마차들이 형형색색의 조명을 밝히는 모습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실제가 훨씬 따뜻했습니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바다 냄새, 연탄 냄새가 뒤섞인 그 순간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낭만포차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습니다.
- 서대회: 납작한 생선 서대를 얇게 썰어 초고추장에 무쳐낸 여수 향토 음식으로, 새콤달콤한 맛이 소주와 잘 어울립니다.
- 조개구이·굴구이: 연탄불 위에서 직접 구워 먹는 방식으로, 연탄 직화 특유의 훈연향이 해산물의 단맛을 끌어올립니다.
- 돌게장: 꽃게를 간장에 삭혀 만든 여수 대표 향토 음식으로, 특유의 짭조름함이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우게 만듭니다.
낭만포차 이후에는 돌산대교(突山大橋) 야경이 기다립니다. 돌산대교란 여수 시내와 돌산도를 연결하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로, 쉽게 말해 다리 양 끝의 탑에 케이블을 걸어 상판을 지탱하는 구조의 다리입니다. 밤 7시 이후 조명이 켜지면 다리 전체가 다른 색깔의 빛으로 물드는데, 돌산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여수 시내 야경과 함께 보면 그 감동이 배가 됩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EXPO) 이후 여수의 야간 관광 인프라가 크게 정비된 덕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엑스포(EXPO)란 세계박람회기구(BIE)가 공인한 국제 박람회로, 2012년 여수에서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주제로 개최되었습니다(출처: 여수세계박람회재단).
그럼에도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주말 여수 낭만포차는 자리 전쟁이 상당합니다. 제가 직접 가봤는데 6시 이전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3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은 각오해야 합니다. 평일 방문을 강력히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향일암 일출 — "사진으로 담기 어렵다"는 말, 처음엔 과장이라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새벽 일출 명소는 "분위기는 있지만 실제로는 힘들기만 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솔직히 저도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추며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향일암(向日庵) 앞에 서는 순간,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향일암은 돌산도(突山島) 남쪽 끝 절벽 위에 자리한 암자로, 한국 4대 기도처(祈禱處) 중 하나입니다. 4대 기도처란 전국에서 영험하기로 이름난 네 곳의 불교 성지를 통칭하는 말로, 향일암은 그 중 남해를 배경으로 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주차장에서 암자까지는 도보로 20~30분 거리인데, 바위틈 사이 좁은 통로를 직접 몸으로 비집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 구간이 은근히 스릴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등산 구간을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미끄럽지 않은 운동화는 필수입니다.
암자 앞 전망대에 도착하면 발아래로 남해(南海) 전경이 펼쳐집니다. 남해란 한반도 남쪽의 해역으로,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이 발달해 있습니다. 리아스식 해안이란 육지가 바다에 잠겨 만들어진 복잡한 해안선 지형으로, 여수 일대의 크고 작은 섬과 굴곡진 해안이 바로 이 지형의 산물입니다. 일출 당시 수평선 너머로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말을 멈췄습니다. 사진으로 담기 어렵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향일암 일출을 계획한다면 아래 포인트를 미리 챙기시기 바랍니다.
- 겨울(12~2월) 일출은 오전 7시 30분경, 여름은 5시 30~40분경으로 계절마다 다릅니다.
- 주차는 이른 새벽일수록 유리하고, 돌산도 내 숙소를 잡으면 이동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 향일암 입구 포장마차의 어묵탕은 새벽 추위를 녹이는 데 실제로 효과적입니다. 저도 하산 전에 한 그릇 마셨는데, 이게 여행의 일부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가을과 겨울이 여수 여행의 최적 시기라는 것은 한국관광공사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후가 쾌적하고 관광객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하산 후에는 돌산도 드라이브를 이어가면 좋습니다. 방죽포 해수욕장과 무술목 해안을 따라가는 드라이브 코스는 렌터카 없이는 즐기기 어렵습니다. 여수엑스포역 앞에 렌터카 업체가 여럿 있으니 당일 픽업도 어렵지 않습니다. 시내 위주라면 시내버스와 택시로 충분하지만, 향일암과 돌산도까지 계획한다면 렌터카가 훨씬 자유롭습니다.
여수는 '한 번 가면 되는 여행지'라고 생각하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미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되는 도시입니다. 화려한 랜드마크 하나 없어도, 바다와 밥상과 밤바다 불빛만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곳은 국내에 흔하지 않습니다. 평일에, 가을이나 겨울에 떠나신다면 주말 성수기의 혼잡함 없이 진짜 여수를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