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다 오래된 친구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살면서 한 번은 히말라야를 봐야 해."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네팔이라니, 너무 낯설고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 카트만두 공기를 처음 마신 순간부터, 이 여행이 보통 여행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인천에서 직항 기준으로 약 6~7시간이면 닿는 이 나라가 이렇게 다른 세상일 줄은 몰랐습니다.
히말라야 조망 — 사랑코트 일출이 인생을 바꾸는 이유
포카라에 도착한 첫날 밤, 숙소 주인이 새벽 4시에 꼭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땐 '뭘 그렇게까지' 싶었는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 말이 진심이었습니다.
사랑코트(Sarangkot)는 포카라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전망대입니다. 해발 1,592m로, 안나푸르나(Annapurna) 연봉과 마차푸차레(Machhapuchhare), 흔히 '물고기 꼬리산'이라 불리는 봉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서 안나푸르나란 히말라야 산맥에 속한 봉우리 군(群)으로, 최고봉이 해발 8,091m에 달하는 세계 10위 고봉입니다.
어둠 속에서 산 실루엣만 보이던 새벽,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붉은빛이 설봉(雪峰)에 닿는 순간, 흰 눈이 황금색으로, 이어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설봉이란 눈과 빙하로 덮인 산의 정상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그때 이유도 모르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냥, 살아있어서 고마운 느낌이었습니다. 여행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었습니다.
히말라야 조망의 질은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네팔 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트레킹 최적기는 10월 ~ 11월과 3월 ~ 4월로, 이 시기에 시계(視界)가 가장 맑아 히말라야 조망 성공률이 높습니다(출처: Nepal Tourism Board). 6월 ~ 9월 몬순(Monsoon) 시즌에는 히말라야 조망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몬순이란 계절에 따라 풍향이 바뀌는 계절풍으로, 이 시기 네팔에는 많은 강우와 짙은 구름이 동반됩니다. 제가 방문한 건 10월 말이었는데,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았습니다.
사랑코트 일출을 계획 중이라면 이 점들을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
- 숙소에서 택시나 투어를 전날 밤에 미리 예약할 것 (새벽엔 즉석으로 구하기 어렵습니다)
- 전망대 도착 목표는 일출 최소 1시간 전, 새벽 4~4시 30분 출발이 안전합니다
- 새벽 산 위는 10월 기준으로도 꽤 쌉쌀하니 바람막이 하나는 반드시 챙기세요
- 현장에서 파는 뜨거운 차이(Chai)를 한 잔 사 마시면 추위와 피로가 한 번에 풀립니다

고산증 대비 — 낭만 트레킹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
히말라야 트레킹 하면 가장 낭만적으로 들리는 코스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즉 해발 4,130m까지 올라가는 루트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중장년 여행자라면 먼저 본인의 몸 상태를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트레킹 의학 분야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고산증(AMS, Acute Mountain Sickness)입니다. AMS란 해발 2,500m 이상의 고도에서 산소 분압이 낮아질 때 발생하는 급성 증상으로, 두통, 구역질, 어지럼증, 수면 장애 등이 나타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는 해발 2,500m 이상에서 24시간 내 두통을 동반한 증상 2가지 이상이면 AMS로 분류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이 있는 분은 반드시 출발 전 담당 의사와 상담해야 하며, 푼힐(Poon Hill, 해발 3,210m) 코스라도 고산 적응 없이 무리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장년 분들께 푼힐 전망대 코스를 가장 먼저 추천합니다. 당일 또는 2박 3일로 완주 가능하고, 안나푸르나 조망과 트레킹의 묘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습니다. 트레킹 전에 발급받아야 하는 TIMS 카드(Trekkers'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Card)도 잊지 마세요. TIMS란 네팔 정부가 트레커의 안전을 위해 도입한 등록 시스템으로, 트레킹 시작 전 의무적으로 취득해야 하며 미소지 시 벌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페와 호수(Phewa Lake)에서의 오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트를 빌려 호수 한가운데 나가 도시락을 꺼내 먹으면서 설산을 바라봤는데, 그 고요함이 사랑코트의 감동과는 또 다른 결이었습니다. 달밧(Dal Bhat)은 네팔의 전통 정식으로 렌틸콩 수프와 밥, 카레가 함께 나오며 무한 리필이 됩니다. 처음엔 단순해 보여서 반신반의하며 먹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루 두 번씩 먹었는데도 먹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모(Momo)는 네팔식 만두로 길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간식인데, 이것도 빠뜨리면 후회합니다.
네팔은 음용수 위생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반드시 봉인된 생수 페트병만 사용하고, 얼음이 들어간 음료는 피하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제가 여행 중 이 원칙을 한 번 느슨하게 지켰다가 하루를 고스란히 숙소에서 보냈습니다.
네팔은 화려한 나라가 아닙니다.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전기는 종종 끊기고, 물 걱정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자꾸 생각나는 건, 그 불편함 사이사이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때문입니다. 히말라야를 한 번쯤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미루지 마시길 바랍니다. 몸이 허락할 때, 발이 움직일 때 가는 게 맞습니다. 비행기 표를 끊는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