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여행 커뮤니티에서 "유럽인데 동남아 물가"라는 말을 봤을 때, 설마 싶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가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조지아는 그냥 저렴한 유럽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문화권이 뒤섞인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트빌리시 구시가지,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
조지아 트빌리시를 처음 걷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여기가 유럽이야, 중동이야?" 제가 그랬거든요. 구시가지 골목에는 페르시아, 오스만, 러시아, 유럽 양식이 한 블록 안에 공존합니다. 건물 외벽에는 나무 조각으로 장식된 발코니가 삐져나와 있고, 그 사이로 유황 냄새가 은은하게 흘러옵니다.
그 유황 냄새의 진원지가 바로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 지구입니다. 아바노투바니란 조지아어로 '욕장 동네'라는 뜻으로, 트빌리시 자체가 이 유황 온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라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트빌리시(Tbilisi)라는 지명도 '따뜻한 곳'을 뜻하는 조지아어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유황 온천욕장은 공동 탕과 프라이빗 룸으로 나뉘며, 개인 룸 기준 시간당 5~15라리(한화 약 2,500~7,500원)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나리칼라(Narikala) 요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4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 요새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트빌리시 전경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제가 오전 일찍 올라갔을 때는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는데, 그 풍경이 어찌나 묘하게 아름답던지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므츠헤타(Mtskheta) 고도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습니다. 므츠헤타는 조지아의 최초 수도로, 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공동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고 유네스코가 공식 인정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스베티츠호벨리(Svetitskhoveli) 대성당과 즈바리(Jvari) 수도원은 각각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데, 직접 서 있으면 그 묵직함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트빌리시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힌칼리(Khinkali): 조지아식 만두로, 안에 육즙이 가득 차 있습니다. 터뜨리지 않고 국물째 먹는 것이 정식 방식입니다. 개당 200~300원.
- 하차푸리(Khachapuri): 치즈를 듬뿍 넣은 전통 빵. 아자룰리(Adjarian) 스타일에는 날달걀과 버터가 추가됩니다. 한 판에 3,000~5,000원.
- 크베브리(Qvevri) 와인: 항아리 발효 방식으로 만든 앰버 와인. 병당 3,000원에서 2만원대까지 다양합니다.

카즈베기와 앰버 와인, 이게 진짜 조지아입니다
조지아 여행 3일차에 카즈베기(Kazbegi)를 향해 군용도로(Georgian Military Highway)를 달렸습니다. 조지아 군용도로란 트빌리시에서 러시아 국경까지 이어지는 역사적인 도로로,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을 관통하며 장엄한 산악 경관을 따라 펼쳐집니다. 창밖으로 눈 덮인 봉우리들이 계속 교체되는 동안 저는 거의 말을 못 했습니다. 예상 밖이었습니다. '산 좀 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카즈베기 마을에 도착해 지프(현지에서 약 2만원 내외)를 타고 올라간 게르게티 성삼위일체교회(Gergeti Trinity Church)는 해발 2,170m 절벽 위에 세워진 14세기 교회입니다. 교회 앞에 섰을 때 느꼈던 그 고요함은 사진으로는 절대 전달이 안 됩니다. 구름이 교회 아래에 깔리고, 카즈베기 봉우리가 뒤에 버티고 있는 그 장면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체력이 충분하다면 도보로 왕복 약 3시간이 걸리지만, 무릎이 걱정되는 분들은 지프를 적극 활용하시길 권합니다.
조지아는 8,000년 역사의 와인 원조국이기도 합니다. 국제포도·와인기구(OIV, 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 la Vigne et du Vin)에 따르면,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 전통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공식 인정받고 있습니다(출처: 국제포도·와인기구). OIV란 와인 산업의 국제 기준을 정하고 회원국의 생산 현황을 집계하는 국제기구로, 와인 분야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공식 국제 기관입니다.
카헤티(Kakheti) 와인 지역의 시그나기(Sighnaghi) 마을에서 마신 앰버 와인 한 잔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앰버 와인이란 백포도를 껍질째 장기간 발효시켜 만든 오렌지빛 와인으로, 일반 화이트 와인보다 타닌감이 강하고 산화 뉘앙스가 풍부합니다. 크베브리라는 항아리에서 발효한다는 점도 다른 나라 와인과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시그나기 주변 알라베르디(Alaverdi)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이 지금도 직접 와인을 빚는다고 하니, 와인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된 조지아의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은 조지아인의 삶과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입니다(출처: 유네스코).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이란 점토로 만든 대형 항아리를 땅에 묻어 포도를 껍질, 씨앗, 줄기와 함께 발효 및 숙성하는 고대 방식을 말합니다. 한국에서 이 스타일의 와인을 구하기 쉽지 않으니, 현지에서 꼭 맛보시길 권합니다.
서유럽 여행을 몇 차례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어느 순간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옵니다. 조지아는 그 지점에서 완전히 다른 선택지가 됩니다. 물가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합리적이고,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에게도 거리낌 없이 와인을 권합니다. 직항 편수가 제한적이라 이동이 다소 불편하고, 지방 소도시에서는 영어보다 러시아어가 통한다는 점은 미리 알고 가시면 좋습니다. 그래도 제 경험상 이 불편함은 조지아가 주는 감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만 아는 여행지'를 원한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