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여행이라고 하면 뉴욕이나 라스베이거스가 먼저 떠오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밴쿠버와 빅토리아를 다녀온 뒤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복잡하지 않고, 무섭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 특히 처음 북미를 경험하는 60~70대에게 이만한 목적지가 없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스탠리 파크 씨월, 걷는 것만으로 답이 나왔습니다
밴쿠버 여행의 핵심은 스탠리 파크(Stanley Park)입니다. 400헥타르에 달하는 원시림 공원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1.4배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그 둘레를 따라 조성된 씨월(Seawall)은 총 8.8km의 해안 산책로인데, 쉽게 말해 바다를 왼쪽에 두고 100년 수령의 삼나무 숲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길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오전 여덟 시에 출발해 두 시간을 걸었는데도 발이 아픈 줄 몰랐습니다. 조깅하는 현지인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밴쿠버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날 아침 처음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세계 살기 좋은 도시 지수(Global Liveability Index)에서 밴쿠버는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해 왔습니다. 여기서 Global Liveability Index란 안전, 의료, 문화·환경, 교육, 인프라 5개 항목을 종합 평가해 도시의 거주 적합도를 수치화한 지표입니다(출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씨월 외에도 카필라노 현수교(Capilano Suspension Bridge)는 이 도시에서 꼭 경험해야 할 장소입니다. 70m 높이에 137m 길이로 걸쳐진 이 구조물은 처음 들으면 아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안전 구조물이 매우 잘 갖춰져 있어 어르신들도 충분히 건널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건너봤을 때 흔들림은 있었지만 공포보다는 짜릿함 쪽이었습니다. 클리프워크(Cliffwalk)와 연결된 숲속 트레일까지 포함하면 반나절은 금방 지나갑니다.
그랜빌 아일랜드(Granville Island)는 일정에서 빠뜨리기 쉬운 곳인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공시장 안에서 훈제 연어(smoked salmon)를 그 자리에서 잘라 맛보고, 던지니스 크랩(Dungeness Crab)을 눈앞에서 고르는 경험이 단순한 관광 그 이상이었습니다. 오전에 방문해 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주변을 걷는 코스가 가장 효율적입니다.
밴쿠버에서 빅토리아 이동 시 이용하는 BC 페리(BC Ferries)는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성수기인 7~8월 주말에는 만차가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출발 2~3주 전에 bcferries.com에서 예약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여기서 BC 페리란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가 운영하는 여객·차량 겸용 해상 교통 수단으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조지아 해협(Georgia Strait)의 풍경을 감상하는 항로 자체가 여행의 일부입니다.
밴쿠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스폿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탠리 파크 씨월 산책 (약 2~3시간, 자전거 대여 또는 도보)
- 카필라노 현수교 & 클리프워크 (반나절)
- 그랜빌 아일랜드 공공시장 (오전 방문 권장)
- 그라우스 마운틴(Grouse Mountain) 곤돌라 탑승 & 정상 전망
- 휘슬러(Whistler) 씨투스카이 하이웨이(Sea-to-Sky Highway) 당일 드라이브

부차트 가든과 고래 관측, 빅토리아에서만 가능한 것들
빅토리아에서 부차트 가든(Butchart Gardens)을 빠뜨리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꽃 정원'이라고 생각하고 방문하면 그 규모에 압도됩니다. 100년 전 석회석 채석장(limestone quarry)이었던 곳을 정원으로 탈바꿈시킨 곳인데, 석회석 채석장이란 건축 자재 등에 쓰이는 석회석을 캐내던 노천 광산을 말합니다. 그 채굴 흔적이 그대로 낮은 지형으로 남아 오히려 꽃들이 층층이 쌓인 절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제가 직접 가본 부차트 가든에서 가장 놀란 건 꽃의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어디를 봐도 색이 넘쳤고,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장소였는데, 찍다 보면 꽃의 이름을 몰라도 전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어르신 여성분이 꽃밭 앞에서 혼자 오래 서 계시길래 나중에 여쭤봤더니, 혼자 캐나다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이 나이에 혼자 와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고 하시던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오전 9~10시 방문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이 적고,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이 가장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름 토요일 저녁에는 가든 내 불꽃놀이 쇼가 열리는데, 이 시간대를 노리고 오후 늦게 입장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기준 35~40캐나다달러(약 3만 4천~3만 9천 원) 수준으로 적지 않지만, 정원의 규모와 완성도를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고래 관측 투어(whale watching tour)는 빅토리아 여행의 또 다른 축입니다. 여기서 고래 관측 투어란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는 보트를 타고 범고래(orca)나 혹등고래(humpback whale)의 서식지 인근 해역으로 나가 야생 고래를 직접 관찰하는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6월부터 10월이 최적 시즌이고, 범고래 두 마리의 등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 배 위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습니다.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했지만 알아듣지 못해도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눈앞에서 야생 범고래가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르신을 동반할 경우 조디악 보트(Zodiac Boat) 대신 대형 크루즈형 보트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디악 보트란 고무 재질의 소형 속도선으로 기동성이 뛰어나지만 흔들림이 크고 승하선이 불편합니다. 반면 크루즈형 대형 선박은 안정감이 있어 승선과 하선이 훨씬 편리합니다. 예약 시 'whale watching cruise' 또는 'large boat' 옵션을 명시적으로 선택하면 됩니다. 캐나다 환경부(Environment and Climate Change Canada)는 고래 관측 선박이 범고래 접근 시 200m 이상 거리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야생 동물의 생태를 보호하면서 관람이 이루어집니다(출처: Environment and Climate Change Canada).
밴쿠버와 빅토리아는 북미에서 처음 여행하는 분들에게 제가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목적지입니다. 치안 걱정이 크지 않고, 도시 자체가 깔끔하며, 밴쿠버 한인타운 덕분에 언어 장벽도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 비용은 유럽이나 동남아보다 확연히 높습니다. 2인 기준 7박 8일에 430만~770만원 수준이고, 식당 팁(15~20%)까지 더하면 하루 식비가 예상보다 빠르게 올라갑니다. 예산은 넉넉하게 잡고, 한인 식당을 적절히 섞어 이용하면 전체 비용을 합리적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부차트 가든과 고래 관측 투어는 비용을 줄이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곳입니다. 이 두 가지는 밴쿠버·빅토리아가 아니면 경험하기 어려운 고유한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