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 오사카 여행을 준비하던 날, 저는 주변에서 "요즘은 트래블카드가 편하다"는 말만 듣고 출발 전날 밤 부랴부랴 앱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숙소 근처 작은 라멘집, 편의점 옆 길거리 야키토리 포장마차, 새벽에 들른 동네 슈퍼마켓까지 현금만 받는 곳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결국 현지 ATM에서 엔화를 인출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ATM 수수료가 한 번에 약 220엔씩 빠져나가 사흘 동안 네 번 사용해서 8천 원을 날렸습니다. 그때 미리 현금 환전을 넉넉히 해뒀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현금만 통하는 일본, 카드로 해결되는 유럽
제가 일본에서 겪은 실수는 단순히 준비 부족이 아니라, 여행지마다 결제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여전히 현금 결제 비중(Cash Payment Ratio)이 높은 나라입니다. 여기서 현금 결제 비중이란 전체 소비 중 현금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일본은 2023년 기준으로도 약 60% 이상이 현금 거래로 이루어집니다(출처: 일본은행). 특히 재래시장, 포장마차, 소규모 식당에서는 카드 단말기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오사카 도톤보리 근처 골목에서 유명하다는 타코야키 가게를 찾아갔는데, 카드는 안 받고 현금만 받더군요. 그때 트래블카드에 충전해둔 엔화를 ATM에서 인출하려고 편의점을 세 곳이나 돌아다녔습니다.
반면 유럽은 상황이 정반대였습니다. 파리와 바르셀로나에서는 카페 한 잔, 지하철 티켓 한 장도 카드로 해결이 됐고, 트래블카드 하나로 열흘을 거의 현금 없이 다녔습니다. 유럽은 비접촉 결제(Contactless Payment)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입니다. 비접촉 결제란 카드를 단말기에 대기만 해도 결제가 완료되는 방식으로, NFC(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을 활용합니다. 유럽연합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유럽 내 비접촉 결제 비율은 전체 카드 거래의 약 75%에 달합니다(출처: Eurostat). 실제로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 작은 빵집에서도 카드 결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심지어 노점상에서 과일을 살 때도 카드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외여행이라도 나라마다 이렇게 다르다는 걸 몸으로 직접 겪고 나서야 "여행지에 맞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일본이나 베트남, 태국처럼 현금 문화가 강한 나라에서는 전체 예산의 60~70%를 현금으로 환전하고 나머지 30~40%만 트래블카드로 충전하는 게 안전합니다. 반대로 유럽이나 싱가포르, 홍콩처럼 카드 결제가 보편화된 곳에서는 트래블카드 위주로 사용하고 재래시장이나 팁 문화를 위해 소액 현금만 준비하면 충분합니다.
수수료와 환율, 실전에서 따져봐야 할 것들
많은 분들이 트래블카드를 추천하는 이유는 환율 우대와 수수료 절감 때문입니다. 실제로 트래블카드는 실시간 환율을 적용하거나 우대 환율을 제공해서 은행 환전보다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환율 우대율(Preferential Exchange Rate)이란 기준 환율에서 고객에게 할인을 적용해주는 비율을 말하는데, 일부 트래블카드는 최대 90~100% 우대를 제공합니다. 쉽게 말해 환전 수수료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트래블카드로 현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때는 별도의 현지 수수료가 붙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겪었던 것처럼 한 번 인출할 때마다 약 220엔, 우리 돈으로 2천 원 가까이 빠져나갑니다. 만약 소액을 여러 번 인출하면 수수료만 엄청나게 쌓입니다.
반면 은행에서 미리 환전을 해가면 현지에서 ATM을 쓸 일이 없으니 이런 추가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다만 은행 환전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은행 앱에서 제공하는 환전 우대 쿠폰을 미리 받아두면 수수료를 50~90%까지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두번째 일본 여행을 준비하면서 주거래 은행 입에서 '환전 우대' 검색을 해봤더니 90% 우대 쿠폰이 바로 나오더군요. 공항 환전소는 절대 피해야 합니다. 공항 내 환전소는 수수료가 일반 은행 대비 2~3배 비싸서, 급하게 공항에서 환전하면 몇만 원씩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DCC(Dynamic Currency Conversion) 거래를 조심하는 겁니다. DCC란 해외에서 카드로 결제할 때 현지 통화가 아닌 원화로 즉시 환전해서 결제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환율이 3~5% 불리하게 적용됩니다. 제가 유럽에서 트래블카드로 ATM 인출을 할 때도 화면에 "한국 원화로 인출하시겠습니까?"라는 선택지가 떴는데, 이걸 선택하면 손해를 보는 겁니다. 반드시 현지 통화로 인출하거나 결제해야 수수료를 아낄 수 있습니다.
여행 기간에 따라서도 전략이 달라집니다. 2박 3일 같은 단기 여행은 소비 예측이 비교적 쉽기 때문에 넉넉하게 현금 환전 후 남으면 면세점에서 소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트래블카드는 앱 설치, 본인인증, 충전까지 준비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 5박 이상 장기 여행이거나 예산 관리가 중요할 때는 트래블카드가 훨씬 유리합니다.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니면 분실 위험이 높고, 트래블카드는 앱에서 지출 내역이 자동으로 기록되어 예산 관리에도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저는 유럽 장기 여행 때 트래블카드 앱을 매일 확인하면서 "오늘은 숙박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갔으니 내일은 식비를 줄여야겠다"는 식으로 실시간 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트래블카드와 현금 환전은 서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봐야 합니다. 저는 이제 여행을 갈 때 트래블카드에 전체 예산의 60~70%를 충전하고, 나머지 30~40%는 현금으로 환전해서 가져갑니다. 카드 결제가 보편화된 곳에서는 트래블카드로 대부분 해결하고, 현금만 받는 소규모 가게나 비상 상황을 대비해 현금을 챙기는 겁니다. 여행지의 결제 문화를 미리 조사하고, 그에 맞춰 비중을 조절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트래블카드 관련 광고나 블로그 글을 보면 마치 트래블카드만 쓰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처럼 표현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여행을 다녀본 입장에서는 지나친 트래블카드 의존이 오히려 낭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르신들이나 스마트폰 앱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앱 충전이 편하다"는 말은 오히려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갑자기 앱이 오류를 일으키거나,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카드를 정지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가장 현명한 여행자는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라, 두 가지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섞어 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